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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

키스세븐지식 2016. 11. 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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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를 몰락하게 만들었던 원인 중 하나에는 괴승 라스푸틴이 있었습니다. 그가 뒤에서 정치를 조정하며 허수아비 황제가 되었고, 결국은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진 것입니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고 황제와 가족들은 총살되고 맙니다. 





요승 신돈과 괴승 라스푸틴 비교


역사에서는 간신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여러 가지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종교와 관련한 망국의 사건으로 많은 예를 드는 것이 공민왕 때의 요승 신돈과 니콜라이 2세 때의 괴승 라스푸틴입니다. 최고권력자란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간섭하는 제3자가 뒤에 있을 경우, 그자는 책임도 의무도 지지 않습니다. 신하의 조언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독단적이 되며,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이 희생되기 일수입니다. 국가의 중대사가 논의를 통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최악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사진: 국정농단의 예로 자주 언급되는 괴승 라스프틴. 서양에서는 아직도 악의 마법사로 표현되곤 한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사진: 국정농단의 예로 자주 언급되는 괴승 라스프틴. 서양에서는 아직도 악의 마법사로 표현되곤 한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 / ⓒ nikolay_saharov)


고려 말의 공민왕은 개혁을 통해 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했던 왕입니다. 그러나 왕비인 노국공주가 아기를 낳다가 죽자 크게 상심하여 정사의 관심을 잃게 됩니다. 그 주변에는 배운 것은 없지만 말을 잘하는 요승 신돈이 있었는데, 슬픔에 잠긴 공민왕은 신돈에게 정치를 맡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신돈도 처음에는 개혁정치를 하는 것 같았지만, 점차 사리사욕만 채우고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공민왕이 이를 의심하자 왕마저 암살하려고 시도하다가 요승 신돈은 결국 제거 당하게 됩니다. 


사진: 2005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신돈'의 포스터. 그로인해 고려는 더욱 쇠약해져 갔다. [요승 신돈과 괴승 라스푸틴 비교](사진: 2005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신돈'의 포스터. 그로인해 고려는 더욱 쇠약해져 갔다. [요승 신돈과 괴승 라스푸틴 비교] / ⓒ MBC드라마)


러시아 말기의 괴승 라스푸틴도 신돈과 비슷하게 나라를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역시 배운 것이 없으나 말만 잘하는 요승이었고 종교의 힘으로 왕가에 접근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가정적으로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지만, 정치와는 맞지 않는 황제였습니다. 

왕자의 혈우병을 호전시킨 일을 개기로 왕비는 라스프틴을 완전 신뢰했고, 황제도 그에게 정치를 맡겨 버렸습니다. 결국 러시아의 멸망과 로마노프 왕가 가족이 학살당하는 사건에 이르게 하며 그 역시 비참하게 제거 당합니다. 


사진: 니콜라이 2세 황제 내외와 그 자녀들의 가족사진. 이 화목한 가정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사진: 니콜라이 2세 황제 내외와 그 자녀들의 가족사진. 이 화목한 가정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 / ⓒ 기록사진)




괴승 라스푸틴의 국정농단


그리고리 라스푸틴은 1860년대에 러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였기에 글도 읽을 줄 몰랐고, 수도승을 자처하며 방랑생활을 하던 자였습니다. 15년을 돌아다니던 그는 1900년대에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황후와 만날 기회를 가진 괴승 라스푸틴은 왕자가 혈우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말솜씨의 그는 왕자를 따듯하게 대하며 마음의 안정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혈우병까지 호전되며 황후의 믿음을 얻게 되었고, 심지어 황제 니콜라이 2세도 완전히 신임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영화 라스푸틴의 한장면. 권력층의 많은 여자들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괴승 라스푸틴의 국정농단](사진: 영화 라스푸틴의 한장면. 권력층의 많은 여자들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괴승 라스푸틴의 국정농단] / ⓒ 영화 라스푸틴 캡처)


밖에서의 괴승 라스푸틴의 생활은 매우 퇴폐적이고 난잡했습니다. 그러나 황실에만 들어가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돌변했습니다. 방랑 생활 중 보고 들은 것들로 이런 저런 조언을 하자 니콜라이 2세는 정치자문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황후는 라스푸틴의 자세에 흠뻑 빠져 있었고, 그는 정치에 간여하며 니콜라이 2세가 실정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세율을 올려서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했고, 빵을 달라는 노동자의 시위를 대량학살로 진압했던 '피의 일요일' 사건도 생겼습니다.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은 나중에 로마노프 왕조가 멸망하고 공산당이 집권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사진: 참혹한 피의 일요일을 알게 하는 장면. 결국 노동자 농민 혁명으로 공산당이 집권한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사진: 참혹한 피의 일요일을 알게 하는 장면. 결국 노동자 농민 혁명으로 공산당이 집권한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 / ⓒ '피의 일요일' 참고사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니콜라이 2세는 황후에게 정치를 맡긴 채 전선으로 갔는데, 이때부터는 괴승 라스푸틴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반대파들은 라스푸틴을 파티장소로 유인해서 죽이기로 했습니다. 몰래 독약을 타 먹여도 죽지 않자 권총으로 쏘았고, 그래도 죽지 않자 곤봉으로 때렸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결국 얼음 덮인 강에 던졌는데, 나중에 사인을 조사해 보니 독살도 총살도 아닌 익사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시를 미리 남기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엽기적인 생명력과 행동 때문에 아직도 라스푸틴은 요승, 괴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진: 지능적인 처신을 통해 주변의 호감을 끌었던 그는 결국 차가운 얼음 밑에서 익사하게 된다. [괴승 라스푸틴의 국정농단](사진: 지능적인 처신을 통해 주변의 호감을 끌었던 그는 결국 차가운 얼음 밑에서 익사하게 된다. [괴승 라스푸틴의 국정농단] / ⓒ alexanderpalace.org)




마지막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공산주의자들에게 일가족이 학살당한 비운의 황제입니다. 당시 그의 자녀들은 4녀 1남이었는데, 그중 가장 어린 아이는 14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가족이 같이 총살되었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사교성은 있었지만, 매우 가정적이고 성격이 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20대에 황제 자리에 올라서 책임이 가중되니, 자신도 모르게 정반대로 고집스럽고 권위적인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는 모범적이라서, 특히 장녀 올가의 경우 17세에 기병대장을 맡을 정도로 훌륭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사진: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 차라리 의회민주주의인 영국의 황제였다면 오히려 인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마지막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사진: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 차라리 의회민주주의인 영국의 황제였다면 오히려 인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마지막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 ⓒ 미상)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치명적 단점이라면, 정치에 무능하고 아내에게 휘둘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가장 큰 실책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피의 일요일'에서 노동자 학살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신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세계대전에 참전하므로써 국민들의 민생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피의 일요일'로 인해 결국 로마노프 왕조의 멸망과 공산주의 소련의 대두를 맞았습니다. 

더구나 괴승 라스푸틴에게 황후가 흠뻑 빠진 후, 아내의 뜻대로 일개 수도승에게 정치를 맡기고 전쟁터를 쫓아다니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2월 혁명을 거쳐 10월 혁명에서 왕위를 빼앗기게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 어린 자녀들까지 일가족이 총살 당하는 비극으로 남아있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 (사진: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 어린 자녀들까지 일가족이 총살 당하는 비극으로 남아있다.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니콜라이 2세] / ⓒ 기록사진)


유럽은 왕족 간의 결혼이 많아서 서로 친족관계이며, 그로인해 유전병도 공유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괴승 라스푸틴이 믿음을 얻게 된 왕자의 혈우병 치료도 사실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의 친족 결혼 때문에 유럽 왕실들에 퍼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요승 라스푸틴이 정치에 관여하면서 니콜라이 2세는 더욱 실정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당이 들어서자 붙잡혀서 시베리아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지하실로 끌고 내려간 공산당원은 황제 가족을 앉혀 놓고 총을 난사했습니다. 당시 자녀들의 나이는 겨우 14세, 17세, 19세, 21세, 23세 밖에 안 되었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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