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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의 사건 배경 설명과 제2연평해전을 주제로 한 영화 연평해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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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의 사건 배경 설명과 제2연평해전을 주제로 한 영화 연평해전

키스세븐지식 2015. 6. 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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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의 사건 배경 설명과 제2연평해전을 주제로 한 영화 "연평해전"]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연평해전은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이 있었습니다. 영화 연평해전은 제2연평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남북한 해군의 전투였던 연평해전은 처음엔 서해교전으로 불렸었으나 나중에 정식 명칭을 연평해전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연평해전은 북한의 무력도발로 인해 사망자 6명과 사상자 18명이 희생당한 국지전입니다. 또한 북한군은 사망자 13명, 사상자 25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서해교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연평해전이 벌어진 서해는 6.25 이후에도 잦은 충돌이 생기는 곳입니다. 

영화 "연평해전"의 배경이 된 제2연평해전과 앞서 벌어진 제1연평해전은 모두 6월에 일어났습니다. 특히 제2연평해전은 2002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였으므로 역사에 덮여진 측면이 있습니다. 뉴스속보로 서해해전 소식이 급전되었으나,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한국팀이 4강을 확정한 날이기도 해서 국민적 관심은 덜하였습니다. 

그래서 영화 연평해전은 그 뒷얘기를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영화 연평해전은 마지막 30분간의 서해교전 장면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긴박한 서해교전의 전투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효과와 전투 묘사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간략한 줄거리로 영화 연평해전을 보자면 이렇습니다. 

고속정인 참수리 357호 병사들은 고된 훈련 속에서 끈끈한 전우애로 뭉쳐집니다. 그 과정에서 승무원들은 가족이야기, 연인이야기 등을 교류하며 인간적인 교감도 가지게 됩니다. 월드컵 3~4위전으로 전국이 뜨거웠던 그날, 갑자기 비상이 걸리고 북한의 침범에 대응하기 위해 전투태세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피 터지는 전투가 벌어집니다. 

연평해전의 전투가 배경이지만 영화 연평해전의 내부는 인간적인 휴먼드라마로 가득 채워져서 보는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 합니다. 




(2015년 6월 11일에 개봉하는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영화 연평해전에 나오는 참수리 357호는 실제로 서해교전에서 북한군의 집중공격을 받다가 인양 중 침몰한 해군 고속정입니다. 가장 많은 피해와 인명 손실을 입은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영화 연평해전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배우 김무열이 맡은 윤영하 대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에 투신한 사연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감동을 주고 있으며, 배우 진구가 열연한 한상국 하사는 결혼한지 6개월 밖에 안 된 신혼으로 부인과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지고, 배우 이현우가 연기한 박동혁 상병은 모정 앞에서는 귀여운 모습이지만 의부병으로써 대원들에게 헌신하는 믿음직한 변신으로 가슴 뭉클함을 전합니다. 

관객들은 영화 연평해전을 보며 가족애와 함께 안타까운 전우애를 죽음이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느끼게 됩니다. 


서해의 백령도와 연평도를 잇는 북방한계선 NLL은 북한 본토에 가깝게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처럼 껄끄러운 지역이다 보니 연평해전같은 비극이 일어나곤 합니다. 북한의 내륙이 육안으로 뻔히 관찰되니 북한 입장에서는 휴전 이후에도 계속 이 지역을 문제 삼아 왔었습니다. 

남한도 어민들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 군함을 같이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실제로 1967년에도 북한 경비정의 공격을 받아서 해군 당포호가 침몰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79명의 승무원 중에 11명이 전사하고 28명이 실종되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영화 연평해전 - 개봉 전 예고편 "그날의 기억")






첫번째 서해교전, 제1연평해전 사건의 설명


제2연평해전이 있기 3년 전, 북한은 이 지역에 무단 남하하여 한국 해군을 긴장시켰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1연평해전입니다. 

1999년 6월 9일부터 6월 15일까지 북한은 일부러 NLL을 들락거리며 남한을 자극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해군은 확전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격을 자제하고 충돌기동 작전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충돌기동이란 배를 충돌시켜 밀어내는 작전인데, 북한의 함선들이 노후화되어서 충돌에 의해 파손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 해군은 경미한 손상만 입은 것에 반해 북한 경비정은 2척이 대파되고 2척이 파손되었습니다. 




(밀어내기 작전 중인 제1연평해전의 당시 상화 / 출처: 국가보훈처 공식 블로그)



마침내 노후한 함선으로 충돌기동을 막아내기 어려웠던 북한군이 연평해전 사격전을 도발을 하였습니다. 

1999년 6월 15일, 충돌기동을 하던 남한 해군 함선에 북한 함정들이 갑자기 사격을 가했습니다. 참수리 357호, 천암함호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함정들입니다. 남한 해군과 북한 해군은 치열한 사격전을 벌였습니다. 

제1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은 어뢰정 한척이 침몰하고 여러 척이 대파 또는 파손되어 돌아갔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한국 해군의 연평해전 피해는 가벼운 부상 밖에 없었는데 비해 북한군의 피해는 130여명이나 되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제1연평해전을 지휘한 북한 책임자는 김윤식 해군 사령관이라고 합니다. 

제1연평해전에서 대패를 한 것을 설욕하기 위해 2002년도에 제2연평해전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공식 문건에 의하면 지휘부는 연평해전 전날 항공편으로 기지에 가서 작전을 지휘한 후 다음 날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제1연평해전에서 노후한 함정으로는 한국의 밀어내기 작전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안 후 처음부터 무력도발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입니다. 




(서해교전인 제2연평해전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침몰당한 참수리 357호 모습)






두번째 서해교전, 제2연평해전 사건의 전투 설명 


2002년 6월 29일, 새벽부터 남한의 어선들이 NLL로 어로작업을 나갔습니다. 해군은 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고속정 6척을 출항시켰습니다. 

그런데 오전 10시 경 북한의 경비정과 고속정이 NLL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남하하는 북한 함정에 대하여 남한 고속정들이 편대를 이루어 막아섰습니다. 제1연평해전에서 밀어내기 작전으로 효과를 본 한국 해군은 이번에도 충돌기동 작전을 펼쳤습니다. 연평해전의 서막이 점점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북한에서 내려 보낸 함정들의 화력이 제1연평해전보다 한층 강화된 상태였습니다. 

한국 해군의 고속정이 150여 톤의 규모에 40mm 기관포를 가진 화력이었는데, 북한 함정은 210여 톤의 규모에 85mm 전차포를 장착한 화력이었습니다. 

다가서는 한국 해군에 대해 북한 함정은 기습적으로 함포를 사격하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선 후에 가해진 기습적 사격이었기 때문에 함포성능보다 선제공격이 우위를 가지는 전투였습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순직한 사망자들의 전투 위치 / 출처: KBS 방송 캡처)



차단기동을 하기 위해 다가서던 참수리 357호에 북한군의 공격이 명중되었습니다. 참수리 357호는 영화 연평해전에서 주인공들이 승선한 함정입니다. 

선제공격을 받은 참수리 357호는 가장 중요한 조타실이 대파되었습니다. 영화 연평해전의 지휘 정장인 윤영하 대위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부정장의 지휘 아래 전투는 계속되었지만 부정장도 다리에 부상을 당한 채였고 이미 핵심시설이 파괴된 후에도 집중 공격을 당했습니다. 참수리호는 250여발의 집중포화로 우리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뒤에 있던 다른 고속정들이 지원에 나서며 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6척의 참수리 고속정이 북한 함정을 공략하였지만 화력과 방어력에서 앞서는 북한 함정은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제2연평해전에서 우리 고속정의 피해가 컸던 것은 등급이 높은 상대 함정에 대항할 한국 초계함들이 너무 멀리 있었기 때문에 공격지원을 하는데 18분이나 걸린 것에 있습니다. 

그때까지 한국 해군의 교전규칙은 차단기동 후 경고사격을 거친 후에야 실제 사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2연평해전에서 기습에 취약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연평해전, 대청해전 교전도 / 제작: 키스세븐, 기본지도: wikimedia.org)



한국 해군의 초계함과 다른 고속정들이 화력지원에 나서자 북한 고속정은 화염에 휩싸였고 다른 함정에 끌려서 다시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제2연평해전에서 한국 해군은 사망자 6명과 부상자 18명의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28명이 승선했던 참수리호에서만 4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부상자도 참수리호 승무원입니다. 참수리 357호는 도저히 인양이 불가능하여 결국은 침몰하였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군은 3~13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25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주인공들의 죽음이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불의의 공격에 의해 생사를 달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해군의 사망자는 윤영하 대위, 조천형 하사, 황도현 하사, 서후원 하사, 박동혁 상병이고 한상국 중사는 실종되었습니다. 소중한 아들, 행복했던 가장들이 국가 방어를 위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제2연평해전이었습니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2009년 대청해전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이 있은 후 7년 만에 다시 일어난 대청해전에서는 남한의 피해 없이 북한만 경비정이 반파되고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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