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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건 훈요십조의 조작설 진실과 전라도 관련 논란

키스세븐지식 2015. 5.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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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건 훈요십조의 조작설 진실과 전라도 관련 논란]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점령한 후 고구려를 중국에게 주고,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가 된지 300여년... 

10세기가 되자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하는 고려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왕건은 운명하며 후왕들에게 훈요십조라는 지침서를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훈요십조가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는 조작설에 휘말리다 


전해오는 훈요십조의 의미를 간추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불교를 잘 섬길 것 

2. 그러나 절을 마구 짓지 말 것 

3. 되도록 왕위는 장남 계승을 할 것 

4. 거란 등을 멀리할 것 

5. 서경(평양)을 중요시 할 것 

6. 불교 행사를 잘 지킬 것 

7. 왕은 민심을 얻을 것 

8. 차현 이남 금강 밖의 인재를 등용하지 말 것 

9. 공평하게 직급을 줄 것 

10. 과거를 거울삼아 배울 것 


훈요십조의 의의라면 고려시대의 사상과 신앙, 규범, 정책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건국의 당사자인 태조가 남겼다는 것에서 또한 귀중한 문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극우 보수가 지역감정을 조장할 때 자주 훈요십조를 거론하면서 훈요십조는 후대에 왜곡되었다는 논란에 있기 때문에, 훈요십조 조작설의 진실 여부가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훈요십조의 제8조의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차현(차령산맥) 이남의 금강(공주강) 밖은 풍수지리적으로 역적이 나올 지형이니 아무리 선량한 백성이라도 벼슬을 주지 말라"고 풀이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의 충청남도 이남의 전라도지역입니다. 그래서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전라도 지역차별에 제8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들은 훈요십조를 근거로 전라도 지역의 사람들을 비하하며 지역차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



물론 훈요십조의 전라도 차별 논란에 대해 반론도 있습니다. 그것이 훈요십조 조작설의 근거입니다. 

우선 역사적 해석의 잘못이라는 반론입니다. 

차령산맥은 20세기 초 일제침략기 때 일본학자가 붙인 지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굳이 차현을 차령산맥으로 해석할 수도 없고 전라도라고 한정 지을 수도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공주강 밖이라는 말은 행정지역을 기준으로 한다면 공주성의 바깥쪽, 즉 강 건너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충청이북지역이 된다고도 합니다. 

이 주장이 더 타당하게 보이는 것은 왕건과 적대적 관계인 궁예의 잔존세력들이 당시 이곳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훈요십조 조작설의 근거에는 전후관계가 맞지 않는 상황근거가 있습니다. 

고려 초기 왕건의 지지세력 중 하나는 후백제에서 귀화한 호남세력입니다. 실제로 신하들 중에는 호남 출신도 많았습니다. 더욱 뜸금없는 것은 왕건이 훈요십조를 내릴 때 그 유지를 받은 사람이 지금의 전라도 출신이었고, 왕건이 후왕인 혜종의 보필을 부탁한 사람도 역시 전라도 지역 출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전라도 사람들에게 전라도 사람은 역적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정황 자체가 이상한 정황입니다. 




(훈요십조에 대한 태조26년의 기사)






훈요십조 조작설 의혹의 내용과 진실에 대한 탐구 


그리고 훈요십조 조작설의 본격적인 의혹은 이렇습니다. 

고려사에 기재된 왕건의 훈요십조는 11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왕건이 죽은지 100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이때 고려사를 만든 것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으로 사초가 다 불타서 다시 적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왕건의 유지를 따라 고려의 왕들이 절을 짓지 않았다든지 호남 출신을 등용하지 않았다든지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즉 후대 왕들이 훈요십조에 적힌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훈요십조라는 것이 왕건 사후에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마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왕실에서 발견됐다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경주 최씨의 집에서 훈요십조가 발견되었다며 그 내용이 고려사에 적히게 됩니다. 

그리고 고려사를 만드는 책임자 가운데에는 경주 최씨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훈요십조에 하필이면 경주 최씨에게 유리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얘깁니다. 


그럼에도 망국적 지역차별론을 거론하는 자들이 계속 훈요십조의 제8조를 들먹이자 훈요십조 조작설이 대두되었는데, 이 미스터리 조작설의 추정내용은 이렇습니다. 

훈요십조가 왕건시대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후대에서 만들어냈거나, 있었더라도 후대에 조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고려 초기의 집권세력이었던 전라도 지방 호남세력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던 경상도 지방의 경주 최씨들이 훈요십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고려초의 국경과 영향지역)



만약 훈요십조 조작설이 진실이라면 권력적 지지기반의 경쟁관계 때문에 역사를 왜곡한 사건이며, 현대에 와서도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위하여 똑같이 왜곡을 하고 있는 상황이 됩니다. 

또 만약 훈요십조가 조작된 것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이라면 잘못된 해석을 가지고 지역감정에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왕건의 훈요십조에서 우리가 정말 배워야할 것은 제7조의 "왕은 민심을 얻을 것"과 제10조의 "과거를 거울삼아 배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란 참 나쁜 심성이 있어서, 좋은 것은 배워오지 않고 나쁜 것만 가져다 쓰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훈요십조 조작설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역사를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역사에서 배워야할 부분이고 무엇이 역사에서 반복되면 안 되는 것인지를 꼬집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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