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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무하마드 알리 - 이준구 (태권도 한국인 스승)

키스세븐지식 2018. 11. 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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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무하마드 알리 - 이준구 (태권도 한국인 스승)] 

레전드 무술인 이소룡과 무하마드 알리의 한국인 스승인 이준구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준구가 이소룡에게 발차기를 전수했다는 일화와 무하마드 알리에게 이준구가 주먹 찌르기를 가르쳤다는 사실보다도, 그들이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 무술인으로 친분을 맺고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인연입니다. 




태권도 이준구 그랜드마스터 


지금은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무예지만, 그 과정에서 '최홍희'나 '이준구' 같은 인물들의 노력이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준구는 미국 태권도와 러시아 태권도의 개척자이며, 그 영향으로 전 세계에 태권도가 보편화될 수 있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한국인 스승 이준구라거나 '이소룡'의 스승 이준구라는 별칭은 이런 공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그랜드마스터"로 불립니다. 


사진: 세계 8000만 인구가 배우는 것으로 알려진 세계 태권도(세계 8000만 인구가 배우는 것으로 알려진 세계 태권도 [이소룡, 무하마드 알리 - 이준구 (태권도 한국인 스승)] / ⓒ Republic of Korea)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준구는 발차기나 주먹 찌르기 하나 가르쳤다고 무슨 스승이냐는 반문을 했지만, 이런 유명 무술인들이 같은 시대에 인연을 맺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소룡과 이준구의 인연은 이소룡이 '절권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이어졌고, 무하마드 알리와 이준구의 인연은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대결에서 맺어졌습니다. 


사진: 이준구, 이소룡도 인연이 있다. 절권도 이소룡 기념 동상(이준구, 이소룡도 인연이 있다. 절권도 이소룡 기념 동상 [이소룡 이준구 무하마드 알리] / ⓒ BRUCELEE3)


이준구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때는 아직 태권도가 제대로 정립되지도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때는 미군의 하우스 보이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제대한 후에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공부하던 그가 본격적인 태권도 인생은 시작한 것은 1962년이었습니다. 워싱턴으로 간 그는 국회의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고, 각국의 대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홍보를 했습니다. 


사진: 미국 뿐 아니라 러시아 태권도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준구(미국 뿐 아니라 러시아 태권도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준구 [한국인 스승 이준구 무하마드 알리 이소룡] / ⓒ kremlin.ru)


그 후 이준구는 45년 간 350명의 미국 국회의원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미국엔 '가라데'가 앞서 있었는데, 그 흐름으로 태권도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레이건 대통령 때 직업교육 고문, 부시 때는 체육 고문을 맡았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 독립 200주년 때 무하마드 알리와 이준구는 함께 수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소룡, 알리와 이준구 


미국에서는 '준 리'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그가 무예를 배우게 된 것은 6살 때 일본 순사의 딸에게 맞고 들어온 사연 때문입니다. 그 후 처음 배운 무술은 '당수도'였습니다. (당수도는 태권도의 모태가 되는 무술) 그리고 이준구가 미국을 동경하게 된 것은 '마를린 먼로'의 영화를 보고 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배경들이 이소룡, 마하마드 알리와 이준구가 인연을 쌓게 된 씨앗이 되었습니다. 


사진: 레이건 대통령의 전문교육부분 고문을 맡았던 이준구(레이건 대통령의 전문교육부분 고문을 맡았던 이준구 [이준구 무하마드 알리 이소룡] / ⓒ 이준구)


이소룡은 중국 절권도를 창시했으며, 무술영화인으로 레전드 대우를 받는 인물입니다. 아깝게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죽기 전 촬영 중이던 영화 '사망유희'를 한국에서 찍고 싶어 했을 정도로 한국 무예인과의 친분도 있었습니다. 이소룡 무예의 시작은 '영춘권'으로 손기술 위주의 무술이었습니다. 이소룡과 이준구의 친분은 영춘권에 제대로 된 "옆차기"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준구는 이소룡에게 옆차기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사진: 알리, 이준구를 그랜드마스터라고 불렀던 세계 챔피언이다(알리, 이준구를 그랜드마스터라고 불렀던 세계 챔피언이다 [한국인 스승 이준구 알리 이소룡] / ⓒ Cliff)


이소룡과 이준구의 친분 후 더욱 유명해진 것은 무하마드 알리에게 이준구가 무예를 가르친 일입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었으며 역사상 유일하게 3차례나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기의 비결은 핵주먹보다는 지능적인 플레이와 속사포 같은 펀치 기술이었고, 재치 있는 말솜씨와 인종차별에 맞선 언행입니다. 이준구와 알리의 친분은 알리가 대가 없이 한국 방문을 할 정도였습니다. 


사진: 이소룡, 무하마드 알리, 이준구의 인연은 1970년대의 추억이다(이소룡, 무하마드 알리, 이준구의 인연은 1970년대의 추억이다 [한국인 스승 이준구 이소룡 알리] / ⓒ 이준구)


이준구가 알리를 처음 만난 건 1974년이었습니다. 일명 "아큐 펀치"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무하마드 알리는 이준구에게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주먹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1970년대는 프로 권투 외에도 프로 레슬링이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일본에는 안토니오 이노키가 유명한 레슬러였습니다. 1976년, 이노키와 알리는 레슬링과 권투의 대결을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시합에서 알리의 코치로 참여했습니다. 





이준구와 알리의 인연 


이소룡과 이준구의 인연은 1960년대에 시작해서 이소룡이 사망하던 1973년까지 계속되었고, 알리 역시도 그가 죽을 때까지 친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이준구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깍듯하게 그를 대했으며 언제나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 경지에 오른 사범) 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한국인 스승 이준구는 한국 알리기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알리의 한국인 스승 이준구와의 수련 모습(알리의 한국인 스승 이준구와의 수련 모습 [무하마드 알리 이준구 이소룡] / ⓒ 이준구)


일본에서 안토니와 이노키, 무하마드 알리의 대결은 실망이 더 큰 경기였지만, 알리는 이준구를 따라서 바로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한국도 프로 권투의 인기가 매우 높았던 때였기 때문에 알리의 방문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준구와 알리는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였습니다. 그러나 1981년 권투에서 은퇴한 알리는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했고, 결국 201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무하마드 알리, 이준구는 함께 한국 TV에도 출연했었다(무하마드 알리, 이준구는 함께 한국 TV에도 출연했었다 [이소룡 이준구 무하마드 알리] / ⓒ Truetopia)


한국인 스승 이준구는 알리가 죽은 후에도 80이 넘는 나이에도 팔 굽혀 펴기를 100개나 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상포진에 걸린 후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그도 하늘로 떠나버렸습니다. 이소룡에게 이준구가 전수한 옆차기도, 알리에게 이준구가 전수한 찌르기 펀칭도 이제는 70년대의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전혀 다른 종목의 세 명의 스포츠인은 그런 인연을 맺으며 모두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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